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정희 정부/평가/논란이 있는 평가 (문단 편집) ==== 정치적 후계자들의 공과 ==== ||[[파일:external/s17.postimg.org/0a4819968d2676eb003657e3009cfa4b.jpg]]|| ||[[파일:external/s12.postimg.org/68488c279a86bd12194aaf29f48eb10c.jpg|height=360]]|| 박정희 자신의 공과와는 별개로 장녀인 [[박근혜]]가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이에 대한 공과가 있다. 박근혜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의 능력이나 업적보다는 박정희의 장녀라는 큰 후광을 물려받았기 때문'''이므로 박근혜의 공과는 곧 박정희의 공과가 된다. 특히 박근혜는 노년층의 박정희 향수에 기대어 소속정당인 한나라당에서 승승장구했으며,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민을 유발해 선거에서 큰 성과를 올려서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제18대 대통령이 된 것도 부모인 [[박정희]]와 [[육영수]]가 정적에 의해 살해당한 불행한 가족사에 대한 노년층의 연민과 박정희 향수가 가장 큰 요인이었다. 사실상 정치적인 세습이다. 추가적인 내용은 [[MB가 다 해주실 거야#박근혜 씨가 한 번만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여기]], 그리고 [[나는 나라 다 팔아먹어도 새누리당이에요|나팔새]] 참고. 무엇보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는 '''박근혜를 박정희의 재림으로 보고 지지한 일종의 [[화물 신앙|적하 신앙]]'''이므로 박정희를 지지하는 노년층에게는 박정희가 박근혜를 후계자로 내려준 셈이고 박정희 시대 이후 민주공화국 시절에 출생한 청년층에게는 박정희 시절의 기억은 없지만 죽고나서도 두고두고 대한민국에 해를 끼친 재앙의 씨앗과 우환거리를 남긴 셈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업적과 과오는 이런 결정적인 유산을 물려준 박정희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박근혜의 최대실정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시 박정희의 집권 시기에도 [[최태민]]의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정치적 문제가 되었는데, 박정희는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하여 나중에 파국의 씨앗을 뿌렸다. 즉 현 세대에게 있어서 박정희의 최대 실정은 경험하지 않은 독재가 아니라 바로 박근혜라는 국가적 재앙거리를 낳은 것이다. 부친의 후광을 물려받아 대통령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벌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역대 대통령 임기 중 최악의 지지율을 갱신[* 한국갤럽 11월 조사 결과 당시 5%]하며 무능을 뛰어 넘은 꼭두각시 대통령이 됨에 따라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 역시 영향을 받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다. 박정희의 기념사업[* 광화문 박정희 동상 건립 계획, 구미시 박정희 탄신제]을 추진하는 것이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다. [[대경권|TK]]쪽 시민들 사이에서는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이제 끝났다. 더 이상은 무덤속에서 기어 나오지 마라'와 같은 평가도 나오고 있는 중이다. 특히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시]]에서 3선을 한 [[남유진]] 전 구미시장이 박정희 기념사업에 돈을 너무 많이 쓰면서 구미 시의 재정을 악화시켰기에 구미 시민들의 반감을 크게 샀으며 그중에서 젊은 세대의 반감이 심해져 구미시장과 시 의회를 민주당이 장악하는 역풍을 불렀다. 북한에서도 [[김정일]], [[김정은]]이 권력을 세습할 수 있는 배경에는 현 북한의 노년층에게 김일성에 대한 향수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정희와 김일성이 살아있던 1960년대 후반[* 70년대부터는 서서히 김정일이 일선에 나오기 시작함]까지는 북한은 한국보다 공업 수준이나 생활 수준 GDP도 높았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무난한 국가였고, 이 시기를 경험한 북한 노년층의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나 숭배는 남한의 노년층의 박정희에 대한 숭배와 맞먹는다. 그래서 [[김정일]]·[[김정은]]의 독재 권력도 상당부분 김일성의 권위와 정치적 유산에 의지해 집권했으므로 이들의 공과는 바로 김일성의 공과와도 연결된다. 11/12대 대통령인 [[전두환]]도 박정희가 키운 육군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통해 군을 장악하였고 박정희 사후 혼란을 틈타서 [[12.12 군사반란]]으로 집권하였고 박정희가 남긴 [[유신체제]]헌법 하에서 소위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박정희가 만든 군부독재의 장치를 이용해 군부독재를 계속했으므로 사실상 박정희 독재의 연장선상에서 박정희 독재 시즌 2에 불과하다. 그리고 제17대 대통령 [[이명박]]도 민주화보다는 경제개발에 치중한 박정희 시대의 경제건설 신화의 주인공으로서 박정희의 이미지와 겹치는 점으로 인하여 박근혜를 내부 경선에서 물리치고 올라온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지지자들의 지지마저 어느 정도 얻어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박근혜만큼 직접적이고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대선 득표율로 따져봤을 때 2위와 어마어마한 차이를 벌려 압승한 만큼 이명박의 당선에는 지난 정권에 대한 염증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이명박의 대통령 당선에는 박정희에게도 나름 기여분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박근혜나 이명박 외에도 많은 보수우익 정치인들이 박정희를 계승하는 것을 내세워 박정희 지지자들의 지지로 보수정치인으로 입신한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의 공과도 상당부분 박정희의 공과로 돌릴 수 있다. 사실상 박정희 지지자와 한국 보수우익 지지자는 거의 겹치는 집단이라 이런 현상이 전혀 무리가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기존 지지층들이 다른 정당 지지로 돌아서거나 부동층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폭락한 상태에서도 박정희 육영수에서 이어져 내려온 박근혜 지지층만으로 (1위인 더불어민주당과 차이가 매우 크긴 하지만) 지지율 2-3위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외연확장을 포기한 채로 이 지지층을 안고 가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박근혜를 강제출당시킨 후에도 박정희 향수를 자극해서 TK의 표심을 얻으려고 한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0&oid=005&aid=0001069965|#]] 이에 왕조국가의 후계자들의 공과가 개국조의 책임이냐는 반론이 있지만 이는 타당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왕조국가가 아닌데도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되었거나 소위 박정희 신화나 박정희의 독재 기조를 이용해 정권을 잡은 경우에는 그 공과에 있어 박정희의 역할을 부정하기 어렵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